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20화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4-09-21 12:35 조회 1,835 댓글 0본문
EP.20 감히 건들면 안 되는 것(2)
감히 건들면 안 되는 것 (2)
“이 씨발놈이 진짜.”
구절엽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허나 귀를 파고든 천한 욕지거린 진짜였다.
“뭐라 하셨소 일공자.”
“..하아, 하여튼 좀 잠잠하게 살려니까 뭐가 자꾸 툭툭 건드려. 그냥 좀 냅둬봐 가만히 살겠다잖아.”
후우욱!
구절엽을 스치고 가는 열기가 거세진다. 구양천이 가진 구염화륜공의 내기가 강해진다는 의미였다.
“이장로님.”
구양천이 이장로를 부른다.
“왜 그러느냐?.”
“대련 시작해도 됩니까?”
착각일까.
이장로의 귀에는 구양천이 ‘죽여도 됩니까?’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새 또 강해진 것인가.’
그렇진 않을 것이다. 기껏 해봐야 며칠이다.
아무리 신이 내린 천재라 한들, 그 안에 저런 폭발적인 성장은 불가능하다.
‘그럼 원래 가지고 있었다는 건가.’
자신이 가진 심법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는가.
무인에겐 육체 단련만큼 중요한 것이 그것이었다. 하면 지금 저 모습은 뭐라고 해야할까.
‘괴이하다.’
마치 수십 년 가까이 심법을 연마했던 이의 능숙함이다.
어찌 그럴 수 있을까.
구양천의 내기나 무공의 수위는 구절엽보다 한참 낮을 것이다. 이장로가 보기엔 그랬다.
하지만 밀리지 않는다.
서로의 내기가 맞붙어 수련장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지만, 누구 한쪽이 잡아먹히진 않고 있다.
이건 누구도 아니고 구절엽에게 가장 충격적인 일이었다.
‘...어째서?’
구가의 쓰레기, 작년만 하더라도 자신의 발밑에서 토악질을 쏟아내던 무능한 가주의 자식.
근데 이게 무슨 상황이지?
고작 일 년, 날짜로 따지면 일 년도 되지 않을 시간이다. 그 안에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다고?
“대련을 시작한다.”
이장로가 말했다. 대련이 시작하고 구절엽이 구양천을 주시한다. 비스듬하게 목검을 들고 상체를 살짝 숙였다.
구룡적칠검(俱龍的七劍).
구가가 사용하는 대표적인 검법의 이름이다.
구절엽의 심법인 구선염공과 잘 맞는 검법이었다.
더 압축된 내기로 빠르고 날카롭게 공격하는 구절엽의 무공은 발도술을 기반으로 두고 있다.
대련을 시작하고도 자신을 멀뚱멀뚱 보고 있는 구양천을 보며 구절엽이 생각했다.
‘역시 괜한 걱정이었군.’
머리부터 발끝까지 빈틈투성이인 모습이다.
아마 자신의 내기를 막아내는데 모든 심력을 쓰고 있겠지.
몇 걸음만 가까이와도 자신이 가진 검의 영역이다.
이제 와서 권법으로 전향했다는 구양천에겐 자신을 이긴다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싸움이었다.
위설아라는 시종에게 눈을 홀려 잠시 정신을 놨었지만, 애초의 목적을 잊어선 안 됐다.
어떻게 다가오든 곧바로 급소를 칠 것이고, 구양천은 막지 못할 것이다.
무슨 발버둥을 치든지 그렇게 가장 추한 모습으로 패배시키면 그만이었다.
목적도 이루고 저 아름다운 시종도 데려간다. 구절엽으로선 일거양득인 일이었다.
다만, 구절엽은 대련이 시작한 직후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도대체 왜.
‘왜 다가갈 수가 없지…?’
구절엽은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당장 달려가 공격하면 되는 일이었다.
내공이든 속도든 근력이든 모든 게 자신이 앞서있다.
하지만 다가갈 수가 없었다.
-똑
구절엽의 볼을 타고 식은땀이 한 방울이 뚝 하고 떨어졌다.
‘열기 탓이다.’
그걸 구절엽은 열기 탓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압도당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자신은…….
“야.”
구절엽이 구양천의 목소리가 움찔했다.
“뭐하냐?”
“...뭐가 말이오.”
“멀뚱멀뚱 뭐 하냐고, 안 들어올 거야?”
“...원래 본 대련의 예는 약자에게 선공을 양보하는 것이오.”
“약자? 누가? 내가? 그래서 지금 그렇게 잔뜩 쫄아계신가?”
구양천의 비아냥의 구절엽이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지금의 모습은 이상하기만 했으니까.
그때 구양천이 말했다.
“전에 내가 너한테 지고 한 달간 앓았다고 했었지.”
구양천이 좌우로 고개를 돌려 목을 풀었다.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뚜둑거리는 소리가 왠지 모르게 살벌했다.
“그게…. 갑자기 왜 궁금하오?”
“딱, 그 정도면 괜찮겠다 싶어서.”
“...?”
문득, 구양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열기가 사라졌다.
대체 왜 없앴지?
구절엽은 순간 정답을 생각해내고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내기가 다 떨어졌군. 이제 더 이상 못 쓰는거야.’
심법이 풀린 구양천은 열기에 짓눌려 한걸음 걷기도 힘들 것이다.
스승이 말하길 자신의 구선염공은 일류 무인조차 쉽사리 못 움직일 수준이라 했으니까.
필히 시간이 지나면 구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는 검봉이 아니라 자신이 될 것이라 말했다.
그러니 구양천이 자신의 내기를 버틸 수 있을 리 없을 것이다.
분명 없어야 했다.
‘역시 그저 허세였나? 이렇게 되면 그냥….’
“먼저 들어가도 된다고 했지?”
“...뭐?”
구절엽의 눈이 커졌다. 숨도 못 쉬고 끙끙거릴 거로 생각했던 구양천이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보고 있었다.
“한 번 더 물어보자, 정말 먼저 들어가도 되냐?”
“강자는….”
“그래, 그럼.”
구양천은 말을 다 듣지 않았다.
구절엽의 시야에 있던 구양천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
무인의 시야는 일반인보다 훨씬 넓고 뚜렷하다.
하물며 조금 있으면 일류 무인이라 불릴지 모를 구절엽의 시야에서 한 번에 사라진다는 것은.
정말 갑자기 땅속으로 들어가거나. 하늘로 솟거나.
‘나보다 빠르거나…….’
그럴 리 없다.
직계의 심공인 구염화륜공은 파괴에 기반을 두고 있다. 반대로 구선염공은 파괴력보단 속도에 기반을 두고 있다.
헌데 나보다 빠를 리가….
빠악-!
“끄으윽!!”
대뜸 얼굴에 파고든 충격에 시야가 흔들렸다. 크게 흔들린 몸 때문에 유지하던 심법까지 통째로 풀려버렸다.
구절엽이 비틀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주르륵하고 바닥에 핏물이 뚝뚝 떨어진다.
코피였다.
“이게 무슨…….”
여전히 눈앞이 흔들리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대련한다는데, 잡생각으로 가득하네? 뒤질라고.”
앞에는 구양천이 서 있었다. 공격을 잇기는커녕 가만히 서서 구절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일부러 턱 쪽 안 맞게 빗겨 쳤는데, 왜 약한 척하고 지랄이야. 빨리 안 일어나?”
순간 정신을 차린 구절엽이 목검을 휘둘러보지만 내기가 담기지 않은 검 따위 위협이 될 리 없었다.
탁!
목검을 휘두르던 팔이 구양천에게 잡혔다.
의문을 생각할 틈은 없었다. 구양천은 곧바로 구절엽의 얼굴을 한 번 더 후려쳤다.
“끄윽…!”
강하게 맞은 구절엽의 고개가 위로 휙 하고 튕겨 올라갔다. 구양천은 그런 구절엽을 멀리 내팽개쳤다.
구절엽이 바닥을 몇 번 구르더니 오보 뒤쯤에서 멈췄다.
구절엽의 몸이 충격을 못 버텨 바들바들 떤다. 이윽고 겨우겨우 몸을 일으키지만, 얼굴은 흘린 코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런 구절엽을 보여 구양천이 말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물어볼게, 내가 들어가도 괜찮겠냐?”
그걸 들은 구절엽의 두 눈이 떨렸다.
그리고 그걸 보던 이장로는 생각했다.
‘...이미 들어갔잖느냐 이놈아.’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
무공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라 배웠다.
다른 곳은 몰라도 구가의 방침은 그러하다.
구가가 품은 이들을 위해 무공을 배우는 것이고.
그들을 품기 위해 강해지는 것이라고.
어릴 때부터 지겹도록 들은 말은 귀에 사무치도록 남았으나.
철이 들 무렵이 되어서도 그게 참 뭣 같은 얘기라 생각하는 것은 똑같았다.
내가 생각하기엔 그렇다.
무공의 본질은 찢는 것이고 부수는 것이다.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체계적으로 생겨난 것이 무공이다.
그걸 갈고 닦아 지키는 데 쓰던지 어디다 쓰던지는 자신의 마음이겠으나.
나는 내가 생각하는 본질에 대해 질리도록 겪었다.
찢고 부수는 것.
치가 떨릴 만큼 많이 겪어봤기에.
더는 겪고 싶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저 개새…. 구절엽인지 하는 놈이 보이는 꼴을 보니 내 내기가 다 사라졌나 생각했나 본데.
밖으로 뿜어져 나오던 열기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되려 나는 그 열기를 몸 안에 품었다.
몸에 품은 내기는 몸속을 뒤집고 다니며 강제로 육체를 활성화시킨다.
이는 구염화륜공이 오성을 넘어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기술이다.
그렇다고 이걸 써서 구절엽보다 강해지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걸 좁히는 것은 단순히 감각의 차이다.
이 세대는 검대로써 마물을 상대하는데 특화되어있다.
인간을 죽이는 것엔 비교적 숙련도가 부족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당장 구절엽과 구연서를 쉽사리 상대할 수 있는 이유도 그럴 것이다.
속에선 뒤집힐 것 같지만 겉으론 티를 내지 않았다.
‘...이제 2성인 내가 쓰기엔 몸에 부담이 너무 심하네.’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나온다. 밖이 추운 온도는 아니었으니 심법 탓이었다.
아무리 길어도 반각(약 7분).
현재로선 그게 한계였다. 더 쓰려 했다간 정말 주화입마에 걸릴지 모른다.
‘그 정도면 충분해.’
비틀거리는 구절엽이 보인다. 거친 숨을 내쉬는 것이 타격으로 인해 급히 끊긴 심법 탓에 내상을 조금 입은 것 같다.
“시간 줄 때 일어나, 다 끝나고 나서 기습이었다느니 개소리하지 말고.”
놈이 내 말에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운다. 의지는 있는 놈인지 자세를 잡더니 곧바로 몸에 내기를 다시 돌렸다.
열기는 아까보다 턱없이 부족했으나, 구절엽이 가진 것은 심도 높은 내공임이 분명했다.
“일공자를 얕본 것을 사죄드리오. 내가 수양이 부족했소.”
조금은 정신을 차린 듯 구절엽이 내게 사과했다.
“변명은 됐으니까, 이번에도 내가 들어갈까?”
“...이번엔 소인이 먼저 선공을 취하겠소.”
“그러던가.”
구절엽이 뚝뚝 흐르는 핏물을 닦으며 자세를 취했다. 구룡적칠검은 발도로 시작해서 발도로 끝나는 초식이다.
초식의 틈이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했기에 구선염공을 사용하는 데 익숙해져 있어야 할 수 있는 검이기도 했다.
구절엽이 검을 휘둘렀다. 열기를 담은 기운이 검 끝을 타고 뿜어진다.
상체를 살짝 틀어 피했다. 시선은 여전히 구절엽에 검에 고정했다.
얕은 기운으로 봐선 두 번째 공격이 진짜였다. 구절엽이 내기를 담아 도약한다. 재빠른 발놀림이었다. 그리고선 내 앞에 당도하기 전 몸을 반 바퀴 회전했다.
구룡적칠검 이식 비현륜검(備弦輪劍).
회전을 통해 담은 구선염공의 기운이 목검에 담겨 있다. 파괴력은 얕으나 말대로 빠른 검이다.
‘초식을 생각보다 잘 잇고 있어.’
동작 하나하나의 틈이 없는 것을 보아 어지간히 수련한 티를 냈다. 하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초식은 초식이다.
자연스럽게 흐른다는 것은 다르게 말해 흐름을 끊으면 오갈곳이 없다는 의미다.
망설임 없이 구절엽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피할 거라 생각했던 내가 되려 돌진하니 구절엽의 눈에 작은 당황이 보였다.
하지만 구절엽은 검을 멈추진 않았다. 열기를 담은 검이 내 머리에 직격하려는 찰나.
단전 속에 구염화륜공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회전시켰다.
동시에 몸 안에 품고 있던 열기도 한 번에 방출시켰다.
뿜어져 나온 열기가 수련장 전체를 단번에 채웠다. 오로지 방출만 한 것이기 때문에 금방 사라질 기운이었다.
하지만 코앞에서 열기를 맞은 구절엽까지 멀쩡할 순 없었다.
구절엽 또한 가진 심법의 뿌리는 내 것과 같기에 큰 타격은 못 입혔을지언정.
사용하던 초식의 동작을 멈춰 세울 수 있었고.
이어 아주 잠시 동안 눈까지 감게 할 수 있었다.
무인의 대련에서 찰나라는 것은 승부를 가르기 충분한 시간이다.
내기를 담은 주먹이 구절엽의 명치에 꽂혔다.
“커 헉…!”
이번엔 아까처럼 손대중을 두지 않았다. 구절엽 또한 내기를 두른 몸이었으나 생각보다 깊게 주먹이 파고든다.
구절엽이 무릎을 꿇고 토악질을 뱉는다.
“컥…. 컥…. 우욱…….”
“내가 제일 좆같은 게 뭔지 알아?”
구절엽을 내려다보다 생각했다.
죽일까?
대련을 시작할 때부터 고민했다.
죽이면 안 되는 걸 아는데, 몸에 끓는 살기를 죽이느라 혈도가 꼬일 지경이었다.
성질을 죽이고 산다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근데 이 새끼가 그걸 자꾸 치잖아.
“나한테 뭐라고 하던지, 어떤 태도를 보이던지, 하물며 소가주 자리를 탐내던지. 그런 것에 나는 하나도 관심이 없어.”
열심히 바닥에 토를 하던 구절엽의 몸이 흠칫한다. 감추고 있던 살기를 살짝 내보낸 탓이었다.
“근데 너 같은 게 감히 탐내면 안 될 것에 손을 뻗었잖아? 나는 그게 좆같다고.”
나는 닿지도 못하는 것을 쉽사리 잡으려 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죽이진 못할 것이다. 개 같게도 지금은 가진 신분이 워낙 좋아서 말이지.
그러니까 나는 한 달, 구절엽이 탓에 고생했다는 한 달. 딱 그만큼만 할 생각이었다.
어디를 해야 할까, 팔을 분질러야 하나? 검을 쓰는 것이 왼손잡이였으니 오른손을 부숴야겠다.
그렇게 손을 뻗는데 내 손을 누군가 잡아 멈췄다.
“여기까지니라.”
손의 주인은 이장로였다.
나는 어이없다는 눈으로 이장로를 바라봤다.
“왜 이러십니까? 이장로님, 대련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절엽이는…. 이미 대련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건 양천이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코에선 핏물이 줄줄 나오고 입에는 토사물이 잔뜩 묻어있다.
주먹이 명치에 직격했기에 기운이 흩어져 쉬이 움직이지도 못할 것이다.
그래도 이대로 끝내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는 눈이 많다.]
이장로의 전음에 결국 멈출 수밖에 없었다.
“후….”
나는 한숨을 쉬고 놈에게서 물러났다.
일장로가 보낸 놈이다 당연히 이놈 혼자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감정에 휩싸여있던 정신이 천천히 차갑게 식었다.
“일장로께 전해드려. 한 번 더 이렇게 나오시면 내가 가주가 되고 싶어 할 것 같다고.”
귀찮게 찔러대지 마라.
이건 그런 경고였다.
알아서 하라는 듯 놈에게서 신경을 끄고 위설아에게 다가갔다.
위설아는 반쯤 만신창이가 되어있는 구절엽은 쳐다도 안 보고 오로지 내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도련님…. 이겼어요?”
불안한 듯 묻는다.
지게 되면 다른 곳으로 가게 될까 그런 건가.
“그러게, 이겼네.”
와아!
내 말에 활짝 웃으며 좋아하는 위설아를 보다가. 나도 덩달아 살짝 웃으며 위설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딱 이 정도.
나는 이 정도 위치면 충분했다.
감히 건들면 안 되는 것 (2)
“이 씨발놈이 진짜.”
구절엽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허나 귀를 파고든 천한 욕지거린 진짜였다.
“뭐라 하셨소 일공자.”
“..하아, 하여튼 좀 잠잠하게 살려니까 뭐가 자꾸 툭툭 건드려. 그냥 좀 냅둬봐 가만히 살겠다잖아.”
후우욱!
구절엽을 스치고 가는 열기가 거세진다. 구양천이 가진 구염화륜공의 내기가 강해진다는 의미였다.
“이장로님.”
구양천이 이장로를 부른다.
“왜 그러느냐?.”
“대련 시작해도 됩니까?”
착각일까.
이장로의 귀에는 구양천이 ‘죽여도 됩니까?’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새 또 강해진 것인가.’
그렇진 않을 것이다. 기껏 해봐야 며칠이다.
아무리 신이 내린 천재라 한들, 그 안에 저런 폭발적인 성장은 불가능하다.
‘그럼 원래 가지고 있었다는 건가.’
자신이 가진 심법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는가.
무인에겐 육체 단련만큼 중요한 것이 그것이었다. 하면 지금 저 모습은 뭐라고 해야할까.
‘괴이하다.’
마치 수십 년 가까이 심법을 연마했던 이의 능숙함이다.
어찌 그럴 수 있을까.
구양천의 내기나 무공의 수위는 구절엽보다 한참 낮을 것이다. 이장로가 보기엔 그랬다.
하지만 밀리지 않는다.
서로의 내기가 맞붙어 수련장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지만, 누구 한쪽이 잡아먹히진 않고 있다.
이건 누구도 아니고 구절엽에게 가장 충격적인 일이었다.
‘...어째서?’
구가의 쓰레기, 작년만 하더라도 자신의 발밑에서 토악질을 쏟아내던 무능한 가주의 자식.
근데 이게 무슨 상황이지?
고작 일 년, 날짜로 따지면 일 년도 되지 않을 시간이다. 그 안에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다고?
“대련을 시작한다.”
이장로가 말했다. 대련이 시작하고 구절엽이 구양천을 주시한다. 비스듬하게 목검을 들고 상체를 살짝 숙였다.
구룡적칠검(俱龍的七劍).
구가가 사용하는 대표적인 검법의 이름이다.
구절엽의 심법인 구선염공과 잘 맞는 검법이었다.
더 압축된 내기로 빠르고 날카롭게 공격하는 구절엽의 무공은 발도술을 기반으로 두고 있다.
대련을 시작하고도 자신을 멀뚱멀뚱 보고 있는 구양천을 보며 구절엽이 생각했다.
‘역시 괜한 걱정이었군.’
머리부터 발끝까지 빈틈투성이인 모습이다.
아마 자신의 내기를 막아내는데 모든 심력을 쓰고 있겠지.
몇 걸음만 가까이와도 자신이 가진 검의 영역이다.
이제 와서 권법으로 전향했다는 구양천에겐 자신을 이긴다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싸움이었다.
위설아라는 시종에게 눈을 홀려 잠시 정신을 놨었지만, 애초의 목적을 잊어선 안 됐다.
어떻게 다가오든 곧바로 급소를 칠 것이고, 구양천은 막지 못할 것이다.
무슨 발버둥을 치든지 그렇게 가장 추한 모습으로 패배시키면 그만이었다.
목적도 이루고 저 아름다운 시종도 데려간다. 구절엽으로선 일거양득인 일이었다.
다만, 구절엽은 대련이 시작한 직후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도대체 왜.
‘왜 다가갈 수가 없지…?’
구절엽은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당장 달려가 공격하면 되는 일이었다.
내공이든 속도든 근력이든 모든 게 자신이 앞서있다.
하지만 다가갈 수가 없었다.
-똑
구절엽의 볼을 타고 식은땀이 한 방울이 뚝 하고 떨어졌다.
‘열기 탓이다.’
그걸 구절엽은 열기 탓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압도당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자신은…….
“야.”
구절엽이 구양천의 목소리가 움찔했다.
“뭐하냐?”
“...뭐가 말이오.”
“멀뚱멀뚱 뭐 하냐고, 안 들어올 거야?”
“...원래 본 대련의 예는 약자에게 선공을 양보하는 것이오.”
“약자? 누가? 내가? 그래서 지금 그렇게 잔뜩 쫄아계신가?”
구양천의 비아냥의 구절엽이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지금의 모습은 이상하기만 했으니까.
그때 구양천이 말했다.
“전에 내가 너한테 지고 한 달간 앓았다고 했었지.”
구양천이 좌우로 고개를 돌려 목을 풀었다.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뚜둑거리는 소리가 왠지 모르게 살벌했다.
“그게…. 갑자기 왜 궁금하오?”
“딱, 그 정도면 괜찮겠다 싶어서.”
“...?”
문득, 구양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열기가 사라졌다.
대체 왜 없앴지?
구절엽은 순간 정답을 생각해내고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내기가 다 떨어졌군. 이제 더 이상 못 쓰는거야.’
심법이 풀린 구양천은 열기에 짓눌려 한걸음 걷기도 힘들 것이다.
스승이 말하길 자신의 구선염공은 일류 무인조차 쉽사리 못 움직일 수준이라 했으니까.
필히 시간이 지나면 구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는 검봉이 아니라 자신이 될 것이라 말했다.
그러니 구양천이 자신의 내기를 버틸 수 있을 리 없을 것이다.
분명 없어야 했다.
‘역시 그저 허세였나? 이렇게 되면 그냥….’
“먼저 들어가도 된다고 했지?”
“...뭐?”
구절엽의 눈이 커졌다. 숨도 못 쉬고 끙끙거릴 거로 생각했던 구양천이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보고 있었다.
“한 번 더 물어보자, 정말 먼저 들어가도 되냐?”
“강자는….”
“그래, 그럼.”
구양천은 말을 다 듣지 않았다.
구절엽의 시야에 있던 구양천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
무인의 시야는 일반인보다 훨씬 넓고 뚜렷하다.
하물며 조금 있으면 일류 무인이라 불릴지 모를 구절엽의 시야에서 한 번에 사라진다는 것은.
정말 갑자기 땅속으로 들어가거나. 하늘로 솟거나.
‘나보다 빠르거나…….’
그럴 리 없다.
직계의 심공인 구염화륜공은 파괴에 기반을 두고 있다. 반대로 구선염공은 파괴력보단 속도에 기반을 두고 있다.
헌데 나보다 빠를 리가….
빠악-!
“끄으윽!!”
대뜸 얼굴에 파고든 충격에 시야가 흔들렸다. 크게 흔들린 몸 때문에 유지하던 심법까지 통째로 풀려버렸다.
구절엽이 비틀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주르륵하고 바닥에 핏물이 뚝뚝 떨어진다.
코피였다.
“이게 무슨…….”
여전히 눈앞이 흔들리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대련한다는데, 잡생각으로 가득하네? 뒤질라고.”
앞에는 구양천이 서 있었다. 공격을 잇기는커녕 가만히 서서 구절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일부러 턱 쪽 안 맞게 빗겨 쳤는데, 왜 약한 척하고 지랄이야. 빨리 안 일어나?”
순간 정신을 차린 구절엽이 목검을 휘둘러보지만 내기가 담기지 않은 검 따위 위협이 될 리 없었다.
탁!
목검을 휘두르던 팔이 구양천에게 잡혔다.
의문을 생각할 틈은 없었다. 구양천은 곧바로 구절엽의 얼굴을 한 번 더 후려쳤다.
“끄윽…!”
강하게 맞은 구절엽의 고개가 위로 휙 하고 튕겨 올라갔다. 구양천은 그런 구절엽을 멀리 내팽개쳤다.
구절엽이 바닥을 몇 번 구르더니 오보 뒤쯤에서 멈췄다.
구절엽의 몸이 충격을 못 버텨 바들바들 떤다. 이윽고 겨우겨우 몸을 일으키지만, 얼굴은 흘린 코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런 구절엽을 보여 구양천이 말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물어볼게, 내가 들어가도 괜찮겠냐?”
그걸 들은 구절엽의 두 눈이 떨렸다.
그리고 그걸 보던 이장로는 생각했다.
‘...이미 들어갔잖느냐 이놈아.’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
무공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라 배웠다.
다른 곳은 몰라도 구가의 방침은 그러하다.
구가가 품은 이들을 위해 무공을 배우는 것이고.
그들을 품기 위해 강해지는 것이라고.
어릴 때부터 지겹도록 들은 말은 귀에 사무치도록 남았으나.
철이 들 무렵이 되어서도 그게 참 뭣 같은 얘기라 생각하는 것은 똑같았다.
내가 생각하기엔 그렇다.
무공의 본질은 찢는 것이고 부수는 것이다.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체계적으로 생겨난 것이 무공이다.
그걸 갈고 닦아 지키는 데 쓰던지 어디다 쓰던지는 자신의 마음이겠으나.
나는 내가 생각하는 본질에 대해 질리도록 겪었다.
찢고 부수는 것.
치가 떨릴 만큼 많이 겪어봤기에.
더는 겪고 싶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저 개새…. 구절엽인지 하는 놈이 보이는 꼴을 보니 내 내기가 다 사라졌나 생각했나 본데.
밖으로 뿜어져 나오던 열기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되려 나는 그 열기를 몸 안에 품었다.
몸에 품은 내기는 몸속을 뒤집고 다니며 강제로 육체를 활성화시킨다.
이는 구염화륜공이 오성을 넘어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기술이다.
그렇다고 이걸 써서 구절엽보다 강해지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걸 좁히는 것은 단순히 감각의 차이다.
이 세대는 검대로써 마물을 상대하는데 특화되어있다.
인간을 죽이는 것엔 비교적 숙련도가 부족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당장 구절엽과 구연서를 쉽사리 상대할 수 있는 이유도 그럴 것이다.
속에선 뒤집힐 것 같지만 겉으론 티를 내지 않았다.
‘...이제 2성인 내가 쓰기엔 몸에 부담이 너무 심하네.’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나온다. 밖이 추운 온도는 아니었으니 심법 탓이었다.
아무리 길어도 반각(약 7분).
현재로선 그게 한계였다. 더 쓰려 했다간 정말 주화입마에 걸릴지 모른다.
‘그 정도면 충분해.’
비틀거리는 구절엽이 보인다. 거친 숨을 내쉬는 것이 타격으로 인해 급히 끊긴 심법 탓에 내상을 조금 입은 것 같다.
“시간 줄 때 일어나, 다 끝나고 나서 기습이었다느니 개소리하지 말고.”
놈이 내 말에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운다. 의지는 있는 놈인지 자세를 잡더니 곧바로 몸에 내기를 다시 돌렸다.
열기는 아까보다 턱없이 부족했으나, 구절엽이 가진 것은 심도 높은 내공임이 분명했다.
“일공자를 얕본 것을 사죄드리오. 내가 수양이 부족했소.”
조금은 정신을 차린 듯 구절엽이 내게 사과했다.
“변명은 됐으니까, 이번에도 내가 들어갈까?”
“...이번엔 소인이 먼저 선공을 취하겠소.”
“그러던가.”
구절엽이 뚝뚝 흐르는 핏물을 닦으며 자세를 취했다. 구룡적칠검은 발도로 시작해서 발도로 끝나는 초식이다.
초식의 틈이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했기에 구선염공을 사용하는 데 익숙해져 있어야 할 수 있는 검이기도 했다.
구절엽이 검을 휘둘렀다. 열기를 담은 기운이 검 끝을 타고 뿜어진다.
상체를 살짝 틀어 피했다. 시선은 여전히 구절엽에 검에 고정했다.
얕은 기운으로 봐선 두 번째 공격이 진짜였다. 구절엽이 내기를 담아 도약한다. 재빠른 발놀림이었다. 그리고선 내 앞에 당도하기 전 몸을 반 바퀴 회전했다.
구룡적칠검 이식 비현륜검(備弦輪劍).
회전을 통해 담은 구선염공의 기운이 목검에 담겨 있다. 파괴력은 얕으나 말대로 빠른 검이다.
‘초식을 생각보다 잘 잇고 있어.’
동작 하나하나의 틈이 없는 것을 보아 어지간히 수련한 티를 냈다. 하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초식은 초식이다.
자연스럽게 흐른다는 것은 다르게 말해 흐름을 끊으면 오갈곳이 없다는 의미다.
망설임 없이 구절엽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피할 거라 생각했던 내가 되려 돌진하니 구절엽의 눈에 작은 당황이 보였다.
하지만 구절엽은 검을 멈추진 않았다. 열기를 담은 검이 내 머리에 직격하려는 찰나.
단전 속에 구염화륜공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회전시켰다.
동시에 몸 안에 품고 있던 열기도 한 번에 방출시켰다.
뿜어져 나온 열기가 수련장 전체를 단번에 채웠다. 오로지 방출만 한 것이기 때문에 금방 사라질 기운이었다.
하지만 코앞에서 열기를 맞은 구절엽까지 멀쩡할 순 없었다.
구절엽 또한 가진 심법의 뿌리는 내 것과 같기에 큰 타격은 못 입혔을지언정.
사용하던 초식의 동작을 멈춰 세울 수 있었고.
이어 아주 잠시 동안 눈까지 감게 할 수 있었다.
무인의 대련에서 찰나라는 것은 승부를 가르기 충분한 시간이다.
내기를 담은 주먹이 구절엽의 명치에 꽂혔다.
“커 헉…!”
이번엔 아까처럼 손대중을 두지 않았다. 구절엽 또한 내기를 두른 몸이었으나 생각보다 깊게 주먹이 파고든다.
구절엽이 무릎을 꿇고 토악질을 뱉는다.
“컥…. 컥…. 우욱…….”
“내가 제일 좆같은 게 뭔지 알아?”
구절엽을 내려다보다 생각했다.
죽일까?
대련을 시작할 때부터 고민했다.
죽이면 안 되는 걸 아는데, 몸에 끓는 살기를 죽이느라 혈도가 꼬일 지경이었다.
성질을 죽이고 산다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근데 이 새끼가 그걸 자꾸 치잖아.
“나한테 뭐라고 하던지, 어떤 태도를 보이던지, 하물며 소가주 자리를 탐내던지. 그런 것에 나는 하나도 관심이 없어.”
열심히 바닥에 토를 하던 구절엽의 몸이 흠칫한다. 감추고 있던 살기를 살짝 내보낸 탓이었다.
“근데 너 같은 게 감히 탐내면 안 될 것에 손을 뻗었잖아? 나는 그게 좆같다고.”
나는 닿지도 못하는 것을 쉽사리 잡으려 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죽이진 못할 것이다. 개 같게도 지금은 가진 신분이 워낙 좋아서 말이지.
그러니까 나는 한 달, 구절엽이 탓에 고생했다는 한 달. 딱 그만큼만 할 생각이었다.
어디를 해야 할까, 팔을 분질러야 하나? 검을 쓰는 것이 왼손잡이였으니 오른손을 부숴야겠다.
그렇게 손을 뻗는데 내 손을 누군가 잡아 멈췄다.
“여기까지니라.”
손의 주인은 이장로였다.
나는 어이없다는 눈으로 이장로를 바라봤다.
“왜 이러십니까? 이장로님, 대련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절엽이는…. 이미 대련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건 양천이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코에선 핏물이 줄줄 나오고 입에는 토사물이 잔뜩 묻어있다.
주먹이 명치에 직격했기에 기운이 흩어져 쉬이 움직이지도 못할 것이다.
그래도 이대로 끝내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는 눈이 많다.]
이장로의 전음에 결국 멈출 수밖에 없었다.
“후….”
나는 한숨을 쉬고 놈에게서 물러났다.
일장로가 보낸 놈이다 당연히 이놈 혼자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감정에 휩싸여있던 정신이 천천히 차갑게 식었다.
“일장로께 전해드려. 한 번 더 이렇게 나오시면 내가 가주가 되고 싶어 할 것 같다고.”
귀찮게 찔러대지 마라.
이건 그런 경고였다.
알아서 하라는 듯 놈에게서 신경을 끄고 위설아에게 다가갔다.
위설아는 반쯤 만신창이가 되어있는 구절엽은 쳐다도 안 보고 오로지 내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도련님…. 이겼어요?”
불안한 듯 묻는다.
지게 되면 다른 곳으로 가게 될까 그런 건가.
“그러게, 이겼네.”
와아!
내 말에 활짝 웃으며 좋아하는 위설아를 보다가. 나도 덩달아 살짝 웃으며 위설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딱 이 정도.
나는 이 정도 위치면 충분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